벌거벗은 두더지의 장수 비밀: 초고분자 히알루론산(HMW-HA)이 여는 조직 미세환경의 힘

들어가며

설치류 대부분이 몇 해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것과 달리, 벌거벗은 두더지(naked mole-rat)는 30년을 훌쩍 넘기는 수명을 보입니다. 이를 사람의 수명으로 치면 약 800년에 해당합니다. 더 놀라운 점은 나이가 들어도 활동성과 생식 능력의 저하가 완만하며, 암 발생 보고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이 특이한 조합의 원인을 한 가지 요인에서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조직 미세환경(ECM), 대사, 단백질 품질관리, 염증 반응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시스템적 결과로 바라보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핵심 고리로 주목받는 초고분자 히알루론산(HMW-HA)을 중심으로 장수 메커니즘을 설명해드립니다.

 

핵심 1: 초고분자 히알루론산_장수의 ‘바탕화장’

벌거벗은 두더지의 피부와 결합조직에는 매우 큰 분자량(수 MDa 급)의 히알루론산이 풍부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를 분해하는 히알루로니다제 활성이 낮아, 고분자 상태가 오래 머무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이 두 조건이 맞물리면 세포는 CD44 등 수용체 신호를 통해 접촉 저해(Contact inhibition)에 더 민감해지고, 필요 이상의 증식을 스스로 멈추는 경향이 강화됩니다. 동시에 ECM의 점탄성(말랑함과 탄력의 균형)이 잘 유지되어, 조직 손상 시 과도한 염증을 불러들이지 않으면서 회복을 돕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요약하면, HMW-HA는 장수라는 긴 여정을 위해 조직의 기본 컨디션을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배경막 같은 존재입니다.

 

핵심 2: 저대사·저체온_천천히 타는 연료 전략

지하 굴에서 사는 동물에게는 낮은 산소, 높은 이산화탄소라는 환경이 숙명입니다. 벌거벗은 두더지는 여기에 맞추어 체온과 기초대사율을 낮게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속도를 늦춘 대사 엔진은 활성산소(ROS)와 대사 부산물의 축적을 줄여 세포 손상을 늦춥니다. 일상적인 ‘손상 부채’가 적게 쌓일수록, 세포와 조직은 나이가 들어도 기능을 오래 보전할 수 있지요.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기보다는 오래 유지한다”는 절전형 생리는 HMW-HA가 다져놓은 안정적 미세환경과 훌륭한 궁합을 이룹니다.

 

핵심 3: 저산소 적응_위기 때 바꾸는 연료 라인

이 동물은 환경이 급격히 나빠져 산소가 극히 부족해질 때 포도당 대신 과당(Fructose)을 연료로 쓰는 해당계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 스위치는 뇌와 심장 같은 필수 장기가 산소 의존도를 일시적으로 낮추며 에너지를 확보하도록 도와, 허혈 스트레스에서 버틸 시간을 벌어줍니다. 평소에는 저대사로 손상을 적게 만들고, 위기에는 연료 라인을 바꿔 핵심 장기를 보호하는 이중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셈입니다.

 

핵심 4: 단백질 품질관리_고장난 부품을 쌓아두지 않기

오래 쓰는 시스템의 관건은 불량 부품을 재빨리 골라내고 교체하는 능력입니다. 벌거벗은 두더지는 샤페론과 프로테아좀으로 대표되는 proteostasis(단백질 항상성) 체계가 잘 유지되어, 오접힘 단백질이나 손상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덕분에 세포 내부의 ‘자잘한 고장’들이 만성 염증과 기능 저하로 꼬리를 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품질관리가 좋아서 노화 신호의 축적 속도 자체가 느려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핵심 5: 낮은 염증·통증 둔감_불필요한 경보를 줄이다.

벌거벗은 두더지는 산성 자극 등 특정 자극에 둔감하고, 전반적으로 염증 반응이 낮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과도한 경보가 반복되면 조직은 쉽게 지치고, 장기적으로는 inflammaging(염증성 노화)가 가속되지만, 이 동물은 그런 소모전을 애초에 줄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HMW-HA가 만든 차분한 ECM, 낮은 대사열, 단백질 품질관리의 뒷받침이 저염증 생리를 함께 지지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서로 어떻게 이어질까: 시스템 관점의 한 장면

HMW-HA가 조직의 물성·신호 환경을 안정화하면, 세포는 불필요한 증식을 억제하고 손상에 과잉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바탕 위에 저대사·저체온이 손상 발생률을 낮추고, 위기 시 과당 해당계가 핵심 장기를 지킵니다. 내부에서는 proteostasis가 고장난 단백질을 신속히 처리하고, 결과적으로 염증 경보의 과다 발령이 줄어듭니다. 각 축은 톱니처럼 맞물려 “손상을 적게 만들고, 생긴 손상은 과하지 않게 처리하며, 핵심 기능은 끝까지 보호하는” 장수의 리듬을 완성합니다.

 

연구가 전해주는 근거의 결론

세포 수준에서는 HMW-HA가 풍부한 조건에서 접촉 저해 민감성이 올라가고, 이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종양화 경향이 커지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생리 수준에서는 저산소 환경에서 과당 기반 해당계 전환이 뇌·심장 보호에 기여한다는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프로테아좀·샤페론 활성이 장기간 높게 유지된다는 사실은, 단백질 품질관리의 우수성이 기능 보전의 시간 축을 지지한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개별 조각만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각들이 서로 이어질 때 그림이 선명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는 시사점

첫째, ECM 표적화입니다. HMW-HA의 합성(예: HAS2)과 분해(예: HYAL) 균형을 조절해 비정상 증식·섬유화·과염증을 넓게 낮추는 접근이 가능해 보입니다. 둘째, 대사 스위치 모사입니다. 허혈성 손상 모델에서 연료 유연성을 안전하게 끌어내는 법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셋째, proteostasis 강화입니다. 샤페론 유도·프로테아좀 조절을 통해 단백질 독성과 노화 관련 기능 저하를 완화하는 전략이 주목됩니다. 넷째, 저염증 미세환경 설계입니다. ECM-면역-통증 경로를 함께 고려해 inflammaging의 균형점을 낮추는 다중 타깃 설계가 요구됩니다.

 

마무리하며

벌거벗은 두더지의 장수는 한 가지 마법의 결과가 아니라, 조직 미세환경-대사-품질관리-염증이 오랜 시간 균형을 잃지 않고 협업한 결과로 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초고분자 히알루론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별 부품의 성능을 올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스템 전체의 부담을 낮추는 설계가 건강수명의 관건임을 이 작은 포유류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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